이전에 즐겨 부르던 찬송가 중에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왜 저 ‘높은 곳을 향해 가야 ’할까요?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는 금방 잘 와 닿지 않는 가사이지요.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수준에서, 우리 눈높이에 같이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낮고 비천한 우리를 위해 땅 아래까지 자신을 낮추고 내려오십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그러하고, 십자가가 그러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본질이 원래 우리 수준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분은 높고 높은 곳에 계신, 우리와 ‘급’이 완전 다른 분이십니다.
예배는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 ‘저 위’를 지향해야 합니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성전이 높은 산 위에 있고, 성전 바깥뜰로 가는 층계가 7계단이며, 안뜰로 오르는 층계는 8계단이며, 내전까지는 또 12계단이나 더 올라가야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들은 예배 때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찬을 받을 때 ‘우리 마음을 주께 올려드립니다!(라틴어 Sursum Corda)’ 라는 고백으로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끌어올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했습니다(엡2:5-6).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보이지 않는 하늘에까지 우리 마음과 영혼을 높이 고양시키는 것. 예배의 신비와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 오늘 우리의 예배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예배를 너무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 할 예배를, 너무나 인간적인 수준에서, 자기 만족을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는지요? 교회에 와서 ‘설교를 이렇게 해라’ ‘찬양이 어떻다’ 마치 백화점 ‘고객 클레임’처럼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설교나 찬양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우리의 취향저격이나 만족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끌어올려주기 위해서 설교도, 찬양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과 마음을 땅의 것들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해 들어 올려야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 계신 높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는 믿음의 시선 이동이, 진정한 예배의 시작입니다.
배준완 목사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9년 9-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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