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초가 되면 많은 분들이 ‘성경 통독’을 해보겠노 결심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창세기, 출애굽기까지는 진도가 술술 잘 나갑니다. 대부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후반부터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결심이 무너집니다. 결정적으로 포기하게 되는 타이밍은 레위기일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제사 목록, 절기 목록에 인내심을 잃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어떻게든 레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해도 민수기에서 또 복병이 기다립니다. 특히 민수기 7장처럼 똑같은 예물 목록이 무려 12번이 반복되면 거의 지뢰밭(?)을 만난 수준입니다. 어지간한 인내심과 집중력이 아니면 제대로 읽어나가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지루하고 긴 본문들을 주시면서 우리의 인내심을 테스트하실까요? 어떤 때는 성경이 많은 사건을 놀라울 만큼 압축적으로 간략히 기록하면서, 어떤 때는 엄청난 디테일을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대충 읽고 지나칠 부분이 아니다, 집중해서 디테일까지 살펴라,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숨은 의미까지 계속 묵상하고 생각하라, 이런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속도를 중시합니다. 무엇이든 빨리, 즉각,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우리에게 때때로 ‘여기서 멈춤’이라는 싸인을 보냅니다. 서두른다고 더 빨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오래 멈춰 서서, 깊이 침잠하고, 그 속에 묻힌 보석을 캐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이 제대로 가고,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열두 지파가 매일 똑같은 예물을 12번이나 반복해서 드리는 장면을 며칠씩 묵상하면서 예배 공동체의 본질에 대해 많은 통찰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본문들이 사실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말씀의 깊은 광맥을 캐는 법을 훈련하게 합니다. 어려운 본문을 만날 때일수록, 분주함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인내하며 집중력을 더 발휘해야겠습니다. 말씀에 깊이 침잠하는 것이 하나님의 광휘에 깊이 잠기는 길입니다.
배준완 목사
QT묵상집 <복있는사람> 2019년 5-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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