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제가 존경하는 한 분이 ‘가벼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오래 동안 컨설팅 관련 분야에서 승승장구 해왔던 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분의 강의와 조언에 감동을 받아 인생의 길을 새롭게 찾고, 수많은 조직들이 획기적인 전략수정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평생 좌절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분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니, 약간은 의외였습니다. 더구나 그 분은 신앙심이 정말 깊은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우울증 같은 건 모르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오늘 시편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편의 저자도 한 때 모든 일이 형통하고 탄탄대로를 달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그는 깊은 수렁에 빠졌고, 영혼이 ‘죽음의 감옥’에 갇힌 듯한 어둠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과정 속에서 주옥같이 아름다운 감사의 찬양을 노래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본심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5,6)”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를 고통과 우울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에게 영원히 지속될 단어는 진노가 아니라, 은총이며, 다함이 없으신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우울과 영혼의 어두운 밤은 무엇입니까? 시인은 그것을 “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라고 표현합니다. 눈물과 슬픔을 어쩌다 찾아와 하룻밤 머물고 가는 불청객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불청객은 아침이 오면 자기 갈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심을 잊고 자기연민에 빠지면, 하루 밤 머물다 갈 뿐인 눈물과 우울을 아예 끌어안고 살게 됩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돼서 감사가 없어집니다. 마음이 우울한 사람들은 남들이 행복해 할 때 더 우울합니다. 나는 이렇게 슬픈데 왜 하늘이 저렇게 푸르냐고 원망합니다. 사람을 보고 주위를 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기억하고, 그 분의 본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똑같은 상황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고통이나 우울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소망과 회복을 향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밤이 찾아와도 견뎌내고 아침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우울증을 겪고 낙심의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거기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계절이 지날 때 찾아오는 감기처럼, 우울증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슬픔은 감사를 이기지 못합니다. 어떤 수렁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보다 더 깊지는 못한 법입니다.
배준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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